하자인트라 (판돌들이 주로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게시판)에 올라온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신 우석훈 박사께서 내일 모레 진행될 연대 특강에 앞서
짧게 쓰신 글이랍니다.

목요일 3시-5시, 하자 104호에서 비디오 컨퍼런스 (원격강의)가 진행될 예정인데
저는 그날 길찾기워크숍 때문에 참가하지 못할 것 같으나
관심있는 사람들은 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글을 이리로 옮겨놓겠으나, 아직 하자도 인트라에만 있는터라
비공개로 걸어놓지요. 퍼가지 마시길.
하지만 캐치스코프들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옮겨둡니다.

정신 나간 사회에서 새로운 삶의 길 찾기

우석훈

1.

저는 전문 작가도 아닐 뿐더러, 르뽀문학에 대해서 상세히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외람되게 여러 분들을 모시고 할 수 있는 얘기가 과연 무엇이 있을지 고민스럽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저는 성실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행여나 저를 닮는 후학이 있을까봐 걱정스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히려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가 지금까지 했던 실패에 대한 애기와 한국 사회를 보려고 하는 기본 시각에 대한 약간의 공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데뷔에 관한 이야기

저는 학자로서 데뷔가 아주 늦은 편에 속합니다. 국제적으로 경제학자들이 보통 A급과 C급으로 갈리는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입니다. 노벨상을 타는 경제학자들 혹은 맨 앞에서 이론들을 끌어나가는 학자들이 그 나이에 대부분 자신의 첫 이론이나 저작을 발표하고, 이론가들이라면 늦어도 제 나이 때에는 자신의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잠깐 A급의 길에 있었던 것 같이 기억되지만,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소위 ‘벙어리 3년, 장님 3년, 봉사 3년’을 다 거치고야 겨우 1쇄도 다 털어내지 못한 저의 첫 번째 책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약간의 이유나 변명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하지 못했고, 용기도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혹시라도 작가로 데뷔하고 싶으신 분이 이 자리에 있으시다면, 제가 했던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늦어도 30이 되기 전에 자신의 결과물을 만드실 수 있기를 되기를 바라고, 혹시라도 그렇게 못하신 분도, 저처럼 결국 ‘대기만성’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만학도가 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0대와 30대의 지체하지 않는 데뷔가,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을 열고 나갈 첫 번째 열쇠라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소신입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저처럼 대충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방법론에 대하여 : 갖추고 싶었으나 갖추지 못하는 것

저는 문과 출신입니다. 그래서 수리적 사유라는 것을 유학간 후에나 겨우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수리적 사유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한국 사람들은 귀납적 사유에는 강하지만, 연역적 사유에는 아주 약합니다. n차원을 설정하고, n-1개의 방법이 틀리므로, n번이 맞다는 전형적인 연역적 사유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약합니다.

그런 이유로 대체적으로 ‘점근법(approximation)’에 의한 사유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떠듬거리며 찾아가기’인데, 이런 식의 사유는 최초의 걸음을 오히려 늦게 만들고, 논리적인 사유의 틀을 부분집합으로 만들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수학 공부를 좀 하시라는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로 길게 사유하는 힘이 필요하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미분방정식을 공부하시라고 권유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경우에는 경제성장론과 생태학을 위해서 수리생물학과 수리생태학에 대한 공부들을 최근에 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공부들이 존재하는 것들을 양적인 형태로 파악하게 하는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고전적인 철학도 대부분 수학적 사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들이지만, 최근의 현대철학들은 이런 고전적 사유의 힘을 키우기 전에 먼저 개념들에 대한 사유로 넘어가게 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생각의 틀을 만드는 데에 그렇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관찰할 때, 역시 양적인 측면으로 관찰을 합니다. 몇 개의 방정식을 세우거나 혹은 작은 시뮬레이션 모델을 먼저 만들고, 하나의 현상이 생기면 전체적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일종의 수치해석을 하는 편입니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서 가장 최근의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하나의 시뮬레이션에 해당하는 작업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통계를 구하기 어려워서 애를 먹기도 하고, 일부분은 유사치나 국제표준 같은 것으로 채워넣기도 하지만, 그렇게 양적 관계로 현상을 재구성하는 일들이 제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좋다’와 ‘나쁘다’라는 판단은, 저는 양적 관계에서 주로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특정 수치의 증가와 감소에 대해서 판단하고, 그 증가가 일으킬 다른 변수에 대한 연관효과 같은 것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재구성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이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구호나 이데올로기의 세상을 벗어나서 조금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황우석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건국 1세대들이 사라지고 2세대는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황우석을 지지하지 않았던 2%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사회에 대해서 해보는 질문입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100층짜리 고층건물이 서울에 열 개 이상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방식으로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가능하면 양적 관계로 변환해봅니다. 그러면 개인의 자의적 판단과 취향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틀거리들을 만들게 됩니다.

4. 누구를 불신할 것인가?

저는 태생이 반골이라서 그런지, 불신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을 거의 믿지 않고, 또한 저 자신도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제 눈을 불신하고, 제 감각을 불신합니다. 그리고 제 느낌은,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삶의 중요한 고비에, 제 직감은 저를 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가슴이 시키는대로 할 때마다, 저는 삶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갔고, 아주 오랫동안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종합해서 내린 판단의 몇 개가 저를 지켜주었다는 제 지금의 제 판단입니다.

제가 생각해보면, 제가 인생에서 잘 한 결정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고액 연봉 대신 ‘가난한 자유’를 선택하고, 다시 자유인이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교수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물질적으로는 많은 것을 잃은 것 같지만,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사상의 자유는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고, 이렇게 생겨난 마음의 평온은 결코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은 일단 틀릴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생태에 대한 사유들이 대부분 그렇고, 정치적 선택이 또한 그렇습니다.

이건 우리나라 사회가 최근 아주 이상해진 사회라서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얘기하는 ‘대세’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학문이든 예술이든, 첫 발을 떼게 된다는 것이 저의 기본 가설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아직도 카프카의 ‘성’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시의 한 가운데에는 성이 있고, 그 성이 어떤 곳인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기다리고 있는 것, 그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불신스러운 존재들의 사이비 진리를 깨어내고 그 안에서 진짜 흐름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예술이 할 일이라는 것이 제가 개인적으로 믿고 있는 예술에 대한 생각입니다.

학문이 직업이 아니듯이, 예술도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 제 개인적 소신입니다. 학자와 예술가들이 밥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사회이지, 학자나 예술가 스스로 먹고 살기 위해서 움직이는 사회, 그 사회는 아주 비참하고, 아주 저열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5.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저는 작업을 시작할 때, 두 가지를 주로 합니다.

첫 번째가 작업가설을 세우는 일인데, 여러 개의 작업가설을 세워봅니다. 물론 실제로 책을 쓰기 위해서 다른 자료를 찾거나 통계들을 뒤지면서 수 십개의 작업가설이 생겨났다가 사라집니다. 가다보면 어딘가 가지 않을까? 물론 천재들은 그럴 수 있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은 작업가설 없이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이 작업가설은 결론과는 다릅니다.

어떤 사실이 과연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해서 실제로 증명 혹은 입증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론은 그와는 약간은 상대적으로 별도의 작업일 겁니다.

<88만원 세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세대간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걸 보여주는 작업은 진작에 끝이 났지만, 마지막 책을 덮기 위해서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라는 말을 해야하는 순간이 옵니다.

너희들이 잘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하나의 답이기는 합니다만, 이건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게, “이리 하세요”라는 말을 하거나 최소한 은유라도 하고 싶어합니다.

작업가설은 맞다고 입증이 되었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생태주의자들의 일부는 <88만원 세대>가 ‘자발적 가난’에 대한 선택과 집단적 귀농이 되기를 희망하기도 했습니다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건 제가 내리고 싶은 결론은 아니었고, 지금의 20대에게 집단적으로 귀농하면 전체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리케이트’와 ‘짱돌’이 결론이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지만, “개겨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 마지막, 괴테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마왕’으로 끝내는 마지막 절을 앞두고 두 달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그 순간의 여러 가지 유형의 결론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결국은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여러 분들도 어떤 형식이든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마지막 순간에 그런 의심과 고통의 순간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을 피하면, 결국 하나마나한 얘기가 되어버리고, 있으나 마나한 얘기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 의심의 순간들을 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가 과연 대중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얘기를 풀어놓을 것인가, 저는 이걸 주로 제목을 고민하면서 작업 시작 전에 하는데, 편의상 이걸 ‘인터페이스’라고 저는 부릅니다. 배치에 관한 얘기일 수도 있고, 논리적 장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저는 보통은 이걸 작업 시작하기 전에 작아놓은 일종의 예비작업을 통해서 합니다.

이 과정이 짧으면 한 달, 늦으면 6개월 정도 걸립니다.

6. 상업성과의 관계

저는 상업적으로 작가로서 성공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제가 하는 상업성에 관한 얘기는 별로 귀담아들을 얘기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름대로 제 입장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책을 출간한다는 것, 그리고 정부기관이나 기타 재단의 지원금 없이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최소한 2,000부 이상은 팔아서 책을 출간해준 출판사에 손해는 끼치지 않겠다는 정도가 첫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이 출판사의 손익 분기점을 넘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해서 책을 내고 싶어도 못 내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출판사에 손해는 끼치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제가 내고 싶은 내용으로 책을 낼 형편은 되었습니다. 물론 아내는... 제가 책을 내는 것 보다는 예전의 제 자리로 더 돌아가기를 바라고, 아니면 남들처럼 열심히 시간강사라도 한 과목이라도 더 하기를 바라기는 합니다만... (저도 책출간의 편익분석을 해보면, 아직 책을 쓰기 위해서 사보는 책이나 자료 비용이 인쇄보다는 더 많이 들어가는 편이니까, 다른 데서 벌어들인 돈으로 그 비용을 채워야 하는 입장입니다...)

최소한 제가 가지고 있는 원칙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내용을 바꾼다거나 결론을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바꾸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에디팅을 하는 편입니다. 쉽게 비유를 들지요.

<아픈 아이들의 세대> 때에는 각주를 달고, 도표도 열심히 그려넣고, 참고문헌도 달았습니다. 그 책은 여전히 1쇄를 못털었습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는 참고문헌과 수치들을 뺐더니, 5쇄까지 가더군요.

<88만원 세대>에서는 아주 약간 넣었던 수학식들과 게임이론의 모델 원형들도 다 뺐습니다. 좀 팔리더군요...

그 때 사용한 수치들과 참고문헌은 나중에 한국 경제 대안시리즈가 일본이나 외국에 출간될 때 일부 다시 넣을 생각입니다.

이런 게 제가 상업성과 했던 타협입니다. 수학식을 쓰고, 통계표를 그려서 저도 훨씬 얄팍하게 학술서처럼 꾸미고 싶은데, 그렇게 해서는 1,000부 넘기기가 어렵더군요.

여러분들도 언젠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형식과 내용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순간들이 올 겁니다. 저는 결론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대체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편인데, 여러분들도 그런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7. 세상은, 니가 구해라!

예전에는 저도 세상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누가 그렇게 얘기하면, “세상은, 니가 구해라!”라고 말해줍니다. 세상은, 아무도 못 구합니다.

작가나 연구자들이 세상 구하는 사람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민중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세상은 민중들이 구하는 것이고, 평범한 한 명 한 명이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편의적으로 제가 만들어낸 원칙입니다.

해보니까, 세상을 구한다고 엄청 인상 쓰고, 혼자 괴로워하다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연스럽게 글에도 빡시게 힘 들어가서, 나중에 읽어보면, 정말 꼴불견이더군요.

세상은, 니가 구해라!

그 대신 충실한 목격자이거나, 분석자로서, 후대에 과연 그 시대에 뭘 했냐라고 누군가 물어볼 때 “내 딴에는 할 만큼 했다”라고 할 정도의, 딱 그만큼의 알리바이만을 만들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 자세가 좋은 자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어깨에 힘은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그리고 제 경험으로는, 어깨에 힘을 빼고 편하게 보기 시작하니까, 왜 이 세상이 미쳤는가가 더 자연스럽게 보이더군요.

“이 문제를 꼭 풀어야겠다...”

혼자서 풀 수 있는 문제는 세상에 없습니다. 상황을 알려주고, 누군가 분석하고, 또 그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대안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면서 세상은 그렇게 종합적으로 진화하고, 또 변해갑니다.

가끔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그렇게 장난스럽게 썼냐고 저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럼 니가 써라... 나도 이런 짓 안하고 음악이나 들으면서 놀고잡다...

혹은 왜 이렇게 우울한 얘기만 쓰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너는 이 똥통에서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먹히냐? 즐겁게 잘 살아라...

진실은 언제나 비장하고, 외로운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가나 학자들의 삶마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성과 한음이 나라구했다고 존경하는게 아니라, 얼마나 통쾌하게 시대를 웃겼습니까? 그런 민족이라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그래서, 어깨에 힘을 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잘 못합니다만...

8. 프레임을 거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좌파입니다.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좌파가 만든 프레임은 하나도 없습니다.

흔히 ‘대세론’이라고 하는데, 이런 대세론을 가장 잘 활용하는 데가 한국에서는 조선일보와 노무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그나마”를 외쳐서는, 나중에 불임의 상태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라는 에드가 스노우 여사의 표현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편입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다는 예를 들면 김훈류의 시대인식, 니들이 하는 말들 결국 다 틀리더라는 노무현식 시대인식, 혹은 우리끼리 어떻게 서로 비판해라는 정파적 시대인식, 이런 것들을 저는 대체적으로 거부하는 편입니다.

무한대의 에너지로 우주의 공간에 쏳아올린 한 점, 들레쥬의 표현입니다만, 작가는 그 무한대의 한 점을 찍는 사람입니다. 단 혼자의 사색의 힘으로도 우주 끝까지 갈 수 있는 힘, 그것이 창조의 힘이고 사색의 힘이라고 합디다.

프레임을 철저히 거부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이런 게 잘 팔려, 이런 게 유행이야, 이런 말들이 제가 제일 경계하는 말들 중 하나입니다.

9. 홀로 서 있는 점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우리나라는 제국주의로 달려가고 있고, 파시즘 안으로 깊숙이 빨려들어가며, 새로운 전쟁을 향해서 나아가는 중입니다.

이 흐름을 막을만한 힘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고, 그 구심점마저 희미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 힘은 거스를 수 없이 진행 중입니다.

경제적으로 1~2년 내에 파국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며, 보다 본격적인 사회의 붕괴는 3~4년 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생태모델에서 Collapse라고 부르는 현상이 아마 다음 대통령 임기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막을 수 있느냐?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반전시킬 힘은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제가 이 사회를 보는 시각은, 그 붕괴 이후에 새로운 방향을 시작할 점들이 지금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건 개인도 아니고, 경제력도 아니고 - 만약 금융공황이나 실물공황을 겪고 나면 이 사회의 경제력이라는 것은 아주 초라해집니다 - 예술과 문화에 그 힘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강남에서 만들어내는 상식, 그리고 지방의 토호들의 만들어내는 대세적 상식, 그것은 오래 지탱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한 때 세계를 지배했지만 너무 빠른 시간 동안에 몰락해버린 17세기의 해상왕국, 네덜란드의 몰락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 때 인도네시아의 커피 농장을 지배하며 전세계에 커피 플렌테이션을 퍼뜨리고, 일본에 ‘난학’을 건네주었던 그 네덜란드의 급속한 몰락과 아주 유사한 형태의 일들이 다음 대통령 임기 내에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 제가 예상하는 이 사회의 흐름입니다.

황우석 사태, 디워 사태,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1~2년 내에 한국 경제의 장파동에 해당하는 본격적인 실물공황을 겪으면, 한 번은 한국에도 ‘리부팅’이라는 형태의 재건 과정이 생겨날 것입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글들과 책들 - 아마 내년 여름경이면 지금의 계획들이 대충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 은 사실은 그 Collapse를 늦추어 보기위한 개인적인 노력들이겠지만, 이 역시 아주 개인적인 알리바이 이상은 되기 어렵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시대의 인식입니다.

이 어려운 순간 한 순간순간을 여러분들이 스스로 서 있는 점이 되어 움직이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런 파국점이 오지 않기를 희망합니다만, 아마 올 거라고 예상합니다. 오지 않는다는 징조는 전혀 존재하지 않고, 올 거라는 상징은, 이미 차고도 넘쳤습니다.

그러나 그 한국 경제 대위기 이후의 모습이 본격적인 파시즘이거나 제국 혹은 전쟁이 아니기를 저는 여전히 희망합니다. 이건 저희 시대의 가장 큰 싸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싸움이 희망적이기 위한 마지막 반전의 계기는 지금의 10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역사의 아직 쓰여지지 않은, 마지막 ‘자유적 존재’는 지금 중3 혹은 고1 그 어디엔가 있는, 제가 한국의 “건국 3세대의 시작”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그리고 지금의 20대까지 포함한 2세대들은, 너무 부패했고, 너무 무기력합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아주 유명한 작가가 되시기도 할 거고, 또 희망이 되시기도 할 것입니다.

별이 되려하지 마시고, 홀로 서 있는 점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부자는 차고도 넘치고, 스타들은 TV만 틀면 어디에나 서 있습니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등대와 같은 점, 그 점이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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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07/25 06:48 댓글수정 또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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