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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0 티어가르텐 Tiergarten

티어가르텐 Tiergarten

On Catchscope/board | 2008/02/20 16:18::posted by yurian


티어가르텐


어떤 도시에서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마치 숲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는 것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 헤매는 사람에게 거리의 이름들이 마치 마른 잔가지들이 뚝 부러지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움푹 패인 산의 분지처럼 시내의 골목들이 그에게 하루의 시간 변화를 분명히 알려줄 정도가 되어야 도시를 헤맨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나는 늦게 배웠다. 그 기술은 내 공책들 압지 위에 그려진 미로들에 처음으로 흔적을 남긴 어떤 꿈을 실현시켜주었다. 아니 그 미로들이 그 꿈의 최초의 흔적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미로들에 앞서 또 다른 미로가 있었고, 그것들보다 더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아리아드네의 실이 있는 그 미로로 가는 길에 벤들러 다리를 거쳐 간다. 벤들러 다리의 완만한 아치형 곡선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언덕의 측면이었다. 그 다리 발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목표 지점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루이제 왕비 상이 있는 곳이었다. 둥근 대좌 위에 놓인 상들은 화단 위로 우뚝 솟아 있었는데, 마치 그 앞을 흐르는 도랑이 모래에 새겨넣은 마법의 곡선에 홀린 듯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동상보다는 동상이 세워져 있는 대좌를 더 좋아했다. 왜냐하면 비록 그 대좌에 새겨진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지만 공간적으로 내게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 미로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함축되어 있음을 나는 오래 전부터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동상 앞에 위치한 넓지만 별 특징없는 광장에서였다. 일반 마차나 의장 마차가 다니는 화려한 길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공원에서도 가장 진기한 부분이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그 광장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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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 암시를 아주 일찍부터 거기서 알아차렸다. 바로 거기에, 아니 멀지 않은 곳에 나의 아리아드네는 자신의 침소를 펼쳐놓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녀 가까이에서 나는 나중에서야 비로소 하나의 단어로 떠올랐던 것, 다시는 잊지 않게 된 사랑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의 원천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 '소녀'는 그 위에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하여 다른 어떤 공원보다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듯이 보였던 그 공원은 내게는 어려운 일, 수행할 수 없는 일로 인해 뒤틀려 있었다. 금붕어 연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구분하기는 얼마나 어려웠던가. '사냥꾼의 가로수길'은 그 이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약속을 했던가. 또 그 약속을 얼마나 지키지 않았던가. 나는 빨강, 하양, 초록의 작은 탑들이 달린, 집짓기 레고 블록처럼 생긴 매점을 찾아 얼마나 숲속을 헛되이 헤맸던가. 루이 페르디난트 왕자 상의 발치에 사프란 꽃과 수선화가 처음으로 피기 시작하는 봄이 올 때마다 왕자에 대한 나의 애정도 되살아났지만 그 또한 얼마나 번번이 무산되었던가. 나와 그 꽃들을 가른 도랑은 그만큼 내게 그 꽃들을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기에. 마치 그 꽃들이 '글라스슈투르츠'안에 놓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군주다움이란 그렇게 아름다우면서도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나와 같은 서클을 다녔던 귀족 가문의 동급생 루이제 폰 란다우가 왜 운하의 물로 꽃을 피운 저 작은 수풀 건너편의 뤼초프 물가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는지를.


나중에 나는 티어가르텐의 새로운 구석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또 다른 곳들도 계속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 이처럼 새로운 장소들을 알려준 것은 어느 소녀도, 어떤 다른 체험도, 어떤 책도 아니다. 30년 뒤 지리에 밝은 한 베를린의 농부가 오랫동안 함께 베를린을 떠났다 돌아온 나를 데리고 나섰다. 그의 오솔길들은 이곳 티어가르텐에 침묵의 씨앗을 뿌리기라도 하듯 고량을 만들어나갔다. 그가 가파른 길들을 앞서 걸어갈 대 모든 길이 그에게는 급경사를 이루었다. 그 길들은, 비록 모든 존재의 어머니들에게 가는 길은 아니라고 해도 분명 티어가르텐의 어머니들에게 내려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스팔트위를 걷는 그의 발걸음을 메아리를 일으켰고 우리가 걷는 보도 위에 비치는 가스등은 보도 바닥에 어슴푸레한 불빛을 던졌다. 티어가르텐에 있는 빌라들의 작은 계단, 주랑식 현관, 띠 모양의 프리즈 장식, 문이나 창의 장식 틀로부터 어떤 약속의 이행을 기대한 사람들은 우리들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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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특히 계단실이 그랬다. 비록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내부는 많이 변했지만, 계단실 창문의 유리는 옛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방과 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 멈춰 섰을 때 심장 박동이 멈추는 순간을 메워주었던 시구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시구들이 내게 어렴풋이 떠오른 곳은 시스틴 성당의 마돈나처럼 공중에 떠 있는 한 여인상이 손에 화한을 들고 니치로부터 걸어 나오는 장면이 그려진 유리 창문에서였다. 어깨에 멘 가방의 끈을 엄지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면서 나는 거기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알아챘다. "노동은 시민의 명예이고, 축복은 수고의 대가이다." 그때 아래층의 대문은 마치 유령이 무덤속으로 꺼지듯이 한숨과 같은 소리를 내며 찰칵 잠겼다. 아마 밖에서는 비가 오는 것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중 하나는 열려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는 계속 계단을 올라갔다.


어린 시절 나를 지켜보았던 카리아티드와 아틀란트, 나체 동자상과 포모나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것은 먼지 쌓인 문지방 신들이었다. 그들은 삶으로, 혹은 집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수호하는 문지방 신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좋아한 이유는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다린 것이 어떤 이방인이든, 옛 신들의 귀환이든, 혹은 30년 전 가방을 메고 그들발치를 스쳐 지나갔던 아이이든 그들에게는 상관없었다. 그들이 있다는 표시만으로 티어가르텐이 있는 베를린 구 서부 지역은 고대의 땅이 되었다. 그 지역에서 생긴 서풍은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실은 배를 타고 서서히 '란트베어 운하'를 따라 올라오는 선원들에게 불어왔다. 그 배가 헤라클레스 다리에 정박할 때까지. 그러면 마치 내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히드라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의 사자가 다시 전승기념탑이 있는 '큰 별 광장' 주변의 밀림에 진을 쳤다.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티어가르텐은 베를린 중심에 자리잡은 거대한 숲의 공원을 가리킨다. 16세기에 프로이센 왕국의 여러 황제들과 귀족들을 위한 사냥터로 만들어졌다가 18세기에 공원으로 바뀌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베를린 동물원 북쪽에서부터 브란덴부르크 문에 이르는 약 4킬로미터, 폭 1킬로미터에 걸친 방대한 규모의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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